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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 _ 강풀의 ‘초능력 세계관’ 시리즈
강풀 웹툰 <브릿지>의 한 장면. 초능력자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여있다. 카카오웹툰 제공
드디어 때가 왔다. ‘토요명작 리플레이’는 이 두 작품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8월 1회 때 소개한 명품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문화방송·2002)와 오늘 소개할 이 웹툰이다. 이 두 작품을 떠올리며 “잘 만든 옛날 콘텐츠를 소개할 방법”을 고민했던 것이 요즘 세대한테 명작을 추천하고, 이전 세대한테 추억을 선물하는 ‘큰일’이 돼버렸다. 하지만 명작이라도 계기성은 있어야 하는 법. 드라마도 아닌 웹툰을, 그것도 여러 편을 한꺼번에 소개할 날이 올 줄은 진짜 몰랐다. 웹툰 작가 강풀의 일명 ‘초능력 세계관 시리즈’다.
생활밀착형 초능력자들이 주인공 12일 한국에 공식 출시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오티티) 디즈니플러스는 지난달 14일 오리지널 콘텐츠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강풀의 웹툰 <무빙>이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무빙>은 강풀이 13년에 걸쳐 내놓은 초능력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2004년 <아파트>를 시작으로 2005년 <타이밍>, 2009년 <어게인>, 2011년 <조명가게>, 2015년 <무빙>, 2017년 <브릿지>까지 이어졌다. <아파트>부터 <무빙>까지는 각각 저마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작품들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이어져 있다. <타이밍>에 나왔던 주인공이 <어게인>에 조연으로 등장하고, <무빙>에도 나온다. 이전 작품에 등장한 초능력자들은 <브릿지>에서 동일 시간대에 모이면서 강풀의 초능력 세계관은 비로소 완성된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드라마로 만드는 <무빙>. 카카오웹툰 제공
계획대로라면 13년 만에 모인 이들은 2019년 <히든>에서 힘을 합쳐 뭔가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소식이 없다. 강풀은 애초 <브릿지>의 후속작으로 <히든> 연재를 시작할 것이고, 이후 10년에 걸쳐 초능력 시리즈 5편을 더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좋게 생각하면, 초능력 시리즈가 앞으로 6편은 더 남은 셈인가. 또 2021년 한국 대중문화의 창의력은 2019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니 강풀의 초능력 세계관도 훨씬 더 기발하게 확장되는 것일까. <히든>이 늦어질수록 팬들의 원성과 함께 기대감이 커진다. 강풀의 초능력 시리즈를 언젠간 반드시 소개하겠다며 담아둔 이유는 수년 전 우연히 접한 이후 받은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웃사람>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영상화된 작품을 일과 관련해 뒤늦게 보다가, 어느 날 그냥 한번 클릭한 <어게인>을 본 뒤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어게인> 다음에 <아파트>, 다음에 <타이밍>을 내키는 대로 보는데, 어라 뭔가 이상한 거다. 예지몽을 꾸는 박자기는 2009년 <어게인>에서 나온 인물인데 이미 2005년 작인 <타이밍>에 나오고 있다. 2009년 <어게인>에서 형사 양성식은 사람이 죽는 날짜를 아는 저승사자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2004년 <아파트>에 양성식이 어떻게 그 능력을 갖게 됐는지가 설명되어 있다. 나머지 작품을 좀 더 읽고 난 뒤 깨달았다. ‘아! 모든 작품은 연결돼 있구나. 한국에도 마블이 있었어!’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 세계관이란 걸 도입했다니. 강풀은 분명 이 방면에선 천재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마블만 사랑하느냐고. 한국형 초능력자들도 더 많이 사랑해줍시다!
작품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걸 알지 못하고 연재 순서에 상관없이 시작했다간 <어게인>을 보려고 <아파트>와 <타이밍>을 다시 보고, 초능력자들이 모인 <브릿지>를 보려고 앞선 이야기인 <아파트>부터 <무빙>까지 다시 보기 시작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런 수고로움에도 강풀의 작품 속 초능력자들은 생활밀착형이라서 좋다. 초능력자라고 해서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뭔가 조금씩 부족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을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게 한다. 친근하다. <무빙>에서 봉석은 몸이 공중에 뜨고, 희수는 몸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 <타이밍>에서 세윤은 10분 후를 미리 볼 수 있고, 민혁은 10초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도와가며 사건을 해결하고, 평범한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타이밍>에서는 각자 가진 작은 능력을 모아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간다. 강풀은 <무빙> 연재가 끝나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협력해 선을 이루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옳은 게 선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형 히어로 봉석이 날아오를까 초능력자들이 사회를 지키는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무빙>부터 초능력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브릿지>로 넘어가면서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깊어진다. 안기부까지 등장해 초능력자들과 엮인다. 강풀은 <무빙>을 연재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손석희 전 <뉴스룸>(제이티비시) 앵커는 강풀을 초대한 방송 인터뷰에서 <무빙>을 두고 안기부란 우리 사회의 모습과 초능력을 가진 부모와 아이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무빙>에는 조인성, 한효주, 류승룡 등이 출연한다. 원작자인 강풀이 직접 드라마 대본을 썼다. <무빙>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몸이 공중에 떠서 엄마가 그 능력을 감추고 살게 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된다. 봉석 부모의 과거가 드러나고, 봉석과 또 다른 초능력을 가진 친구들도 등장한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디즈니플러스 제공
디즈니플러스가 12일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마블 전 시리즈를 차례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국내 팬들이 들떠 있다. 10년 전 마블을 인수해 더 크게 성장시킨 디즈니에서 한국형 초능력 시리즈인 강풀의 <무빙>을 드라마로 만든다는 것에 괜히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어쩌면 국내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오티티가 활성화된 시대를 만나 2000년부터 진행해오던 그만의 세계관을 더 확장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강풀은 지난달 14일 쇼케이스에서 “웹툰에서 풀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드라마에 촘촘하게 풀어냈다. 한국형 히어로물을 빨리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봉석이가 마블 속 영웅처럼 전세계를 날아다니는 날이 오는 게 아닐까? 꿈이 크다고? 케이(K)팝이 빌보드 차트 1위를 하고,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것도 예전에는 꿈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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