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김보미 인턴기자] 바람 살랑 부는 제주에는 특색있는 독립책방들이 참 많아요. 아름다운 바닷가를 마주하고 있는 서점, 낡은 집을 개조해 만든 서점, 폭신하고 따뜻한 털을 가진 고양이가 얼굴을 부비며 반겨주는 서점···
오늘은 그 중에서도,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주제를 가진 서점을 소개해 볼까 해요. 매일매일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그래서 우리의 삶과 결코 뗄 수 없는 것. 바로 음식이죠. 벌써 흥미롭지 않나요? 음식과 요리에 관련된 책방이라니!
오래 전에 사람들이 보았던 요리책을 통해 과거를 만나고, 음식에 대해 공부하며 현재의 요리를 살펴볼 수 있는 곳. 한국 음식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방. 이번 주 주간책방>의 주인공은 '제주음식책방 달래'입니다.
Q. 책방지기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및 서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모란 안녕하세요. 제주음식책방 달래의 책방지기 서모란입니다. 지난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민속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제주로 내려왔어요. 논문 주제가 '2020년 현재의 제주 음식'에 관한 내용이어서 현지조사 때문에 제주에 왔다가, 베지근 연구소와 함께하게 되면서 이주를 결심했습니다. 원래는 외식, 식품 관련 전문지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숙명여대 전통식생활문화전공에서 석사를 마친 뒤에는 숙대 한국음식연구원에도 잠깐 근무했습니다.
고선희 '미식탐독', '쉣보름불멍 두둥실', '무비온더테이블' 등 책방 달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매니저이자 베지근 연구소에서콘텐츠 기획, 글쓰기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는 고선희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올리브쇼, 한식대첩 등 방송작가로 일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축제 및 행사 대행사, 독서 및 논술 강사로 일을 하다 베지근 연구소를 만나게 되어 제주 문화와 음식 관련 일들을 기획하고 음식 책방 달래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음식책방 달래는 지난 4월 22일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이 놀랄 정도로 책이 많지 않아요. 음식 관련 중고책 200권 정도와 오래된 해외 요리 북클릿 20점 정도를 판매용 책으로 비치해 두고 있어요. 팔지 않는 전시용 책 같은 경우에는 20권 정도 전시하고 있는데, 테마에 따라서 바꾸고 있어요.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서 주제에 따라 선별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Q. '책을 팔지 않는 요리책방', 책방 달래를 설명하는 단어가 참 독특해요. 이 책방은 어떤 콘셉트로 만들어졌나요?
2019년 베지근 연구소의 팀원들과 처음 만나고 나서 서로 어떤 꿈이 있는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그때 제가 농담삼아 말한 것이 나중에 "책을 팔지 않는 책방을 하는 노인"이 되고 싶다는 거였는데, 그때 현재 베지근 연구소 소장인 김진경씨가 왜 노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느냐고, 작게 한 번 시작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책을 팔지 않는 책방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음식 이야기를 좋아하고 음식 공부를 하는 분들과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을 함께 나누고 공부하는 것이 제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공간만 있으면 제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펼쳐놓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었거든요. 연구소라고 하기엔 거창해서, 책을 팔지 않는 책방 정도가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Q. 책방지기님께서는 요리책을 수집하시고 이 분야를 깊이 공부하셨는데, 다른 분야가 아니라 '요리', '요리 책'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전문지 기자로 활동했어요. 첫 직장은 외식관련 매체였고, 두 번째직장에서는 수출입 농식품 관련 파트의 취재를 담당했죠. 몸이 아파서 부득이하게 퇴사하고 1년 정도 휴식하면서, 향후에는 취재기자가 아니더라도 음식 관련 글을 꾸준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숙명여대 전통식생활문화전공 석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기자생활을 시작한 2008년부터 일 때문에, 또 취미로 음식 관련 책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오래된 요리책에도 관심을 가지고 책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게 10년 정도가 되었네요.
Q.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책방지기님의 책이 복간된 것이라고 들었어요.
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경우는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을 지난 해 출판사를 통해 복간했어요. 그대로 복원하는데 가장 중점을 두고 제 해석이나 설명은 전혀 넣지 않았죠. 이미 그런 작업은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 원장님이나 궁중병과연구원의 정길자 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좋은 선생님들이 해 주시고 계세요. 요리책 수집가로서 생각해 봤을 때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원형 그대로의 자료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출판사 사장님도 뜻이 맞아 그대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가독성을 위해 책 크기만 조금 키웠고 1930년대 원본과 거의 같도록 만들었어요.
Q. 책방이 위치해 있는 복합문화공간에 대해서 짧은 설명을 부탁드려요.
저희 책방 달래는 '케왓'이라는 공간에 입점해 있어요. 케왓은 도공유자산인데요,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2019년 케왓 운영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고, 베지근연구소가 지원하여 선정되었습니다. 작년 6월부터 운영중이죠. 2층에는 쿠킹클래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1층에는 '드릇마농'과 책방 달래가 함께 있는데, 차나 음료, 간단한 스낵류를 판매합니다. 하지만 다과 판매가 주 목적은 아니고, 원도심 주민들이 언제나 찾아와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또,저희가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쉣보름불멍 두둥실', '무비 온 더 테이블'등 음식이 포함되어 있는 프로그램은 드릇마농 팀과 함께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줄리 앤 줄리아'라는 영화를 테마로 '무비온더테이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책방달래의 고선희 씨가 프로그램을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진행을 맡았고요, 영화에 나오는 음식(보리빵 토마토 카나페,버섯 보리 리조토,뵈프부르기뇽)의 시연과 음식은 드릇마농에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Q. 책방 이름처럼, 제주 음식과 관련된 책이 많이 준비되어 있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책방에서는 어떤 책들을 만날 수 있나요?
평소에 관련 교육이나 테마, 큐레이팅이 없을 때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1930-50년대 요리책들로 구성됩니다. 거기에 비교적 현대서인 제주 음식 관련 책들과 음식 인문학자이자 제 지도교수님이신 주영하 선생님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책들은 '개정증보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간편조선요리제법', '사계의 조선요리', '소화가사실습서' 등이 있어요. 워낙 오래된 책들이라 도서관처럼 맘껏 펼쳐볼 수는 없고요, 요리책 세미나 등이 있을 때 제가 펼쳐서 보여드립니다.
Q. 요리책 수집가이자 북큐레이터이신 책방지기님만의 큐레이션 기준이 궁금합니다.
큐레이션은 제가 요리책이나 음식인문학 관련 수업을 할 때 그에 맞춰서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통조림에 담긴 제주 식재료'를 주제로 수업을 할 때는 제주의 옛 통조림공장 사진이 나와있는 사진자료집, 대표적인 통조림인 스팸에 관한 자료들, 또 산업식품인 간장이나 조미료에 관한 책을 전시했습니다. '주부의 탄생'을 주제로 수업을 할 때는 1950년대 중반 이상적인 주부의 모습을 이미지화 한 북클릿들이나 요리책, 그리고 1960-1970년대 한국의 주부들이 필수로 소지해야 했던 가정백과 류의 책이나 요리전집 등을 전시했습니다.
Q. 음식 관련 책을 정말 많이 소장하고 계시는데, 이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얼마 전에 세어보니 제 서재에 총 3500여권의 책이 있고, 이중 3000권 정도가 음식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책들이더라고요. 현재 시중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 위주로 말씀드리자면, '식탁 위의 한국사', '음식 인문학'을 추천하고 싶어요. 근현대 우리나라 음식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책이에요.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한국 음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음식 에세이로는 성석제 작가의 '소풍'을 추천해요. 문체가 유쾌하고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됩니다.
최근에 저희 베지근연구소 직원들이 함께 읽고 있는 책은 '(유쾌한탐식가의 종횡무진 음식인문학) 맛없어?'라는 책이에요. 본인이 경험한 온갖 맛없는 음식 경험을 풀어놓은 책이죠. 발효 청어 통조림, 뱀, 곤충, 까마귀 등 도전하기 힘든 음식, 게나 새우튀김, 라면 등 보통은 맛있는 음식이지만 최악의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요. '괴식'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Q. 책방에서 열리는 독서모임 '미식탐독'은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어떤 계기로 프로그램을 기획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뭐 먹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는 왜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할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우리가 먹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란 말처럼, 음식을 매개로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음식인문학 독서모임 '미식탐독'을 기획하게 되었죠.
더불어 책방이 음식 커뮤니티 '케왓'에 위치하고 있으니, 음식 책과 함께 음식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책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식을 즐기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으로 세상을 읽는 독서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다양한 음식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Q. '미식탐독'에서는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조선의 미식가들' 등 다양한 책을 선정해 모임을 진행하고 계시는데, 책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음식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는 것이 첫 번째 책을 고르는 선정 기준입니다. 가볍게 읽기 편한 소설과 에세이부터 호기심과 의문점이 생기는 음식의 역사와 문화 등, 다양한 테마로 좀 더 다채롭고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음식 책들로 선정했습니다.
Q. 책방 달래가 오픈할 때, 첫 요리책 세미나가 열렸었지요. 어떤 책을 다루셨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1900년대 한국 요리책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책들로 구성했어요.1900년대 이전에 나온 책들은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영인이나, 주해, 해석본 등을 활용했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어서 원본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책들은 '간편조선요리제법', 'Oriental Culinary Art', '이조궁정요리통고', '고등요리실습' 등이 있었어요.
Q. 책방 달래를 운영하며, '책방 열길 잘 했다!' 라고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책방에 책이 워낙 없어서 실망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가끔, 1900년 초중반 요리책의 원본이나 중요한 자료를 보고 싶은데 계기가 없었다가 저희 책방을 알고 들러주신 분들이 있을 때 제일 기뻐요. 그럴 때면 평소 보여드리지 않던 책들을 꺼내며 신나게 설명하곤 해요. 제가 외부 수업이나 일정으로 자리를 비울 때 그런 손님들이 오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정말 안타깝죠. 미리 저와 약속을 잡으면 원하시는 책을 보여 드릴 수 있으니 꼭 연락을 주시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Q. 2020년이 지나가기 전,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2020년 책방달래의 목표는 제주음식문화 관련 책들을 두 권 기획하는 것입니다. 출판단계까지는 못 가더라도 집필을 완료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목표라서 지금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준비하고 있어요. 2021년에는 책방달래에서 저희가 쓴 책들을 팔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진=제주음식책방 달래
김보미 인턴기자 jany6993@asiae.co.kr
July 31, 2020 at 04: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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