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신기하면서도 이상했어요. 거짓말 같아서 차트를 자꾸 들어가 확인해 보기도 했죠. 볼 때마다 자부심 들고 뿌듯했습니다."
가수 윤하는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음악 여정에도 엄청난 힘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이처럼 즐거워한 것은 올해 3월 발표한 정규 6집 리패키지 음반 '엔드 띠어리 : 파이널 에디션'(END THEORY : Final Edition)의 타이틀곡 '사건의 지평선'이 차트 순위 역주행을 이뤄내서다.
9월만 해도 100위권 밖에 있던 이 노래는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의 어느 지점'을 가리키는 '사건의 지평선'에 이별을 비유한 가사가 참신하다는 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가을 대학 축제 무대를 통해 윤하의 폭발적인 가창력도 덩달아 조명받으며 순위가 수직 상승했다. 대형 걸그룹의 잇따른 컴백 속에서도 이 노래는 꿋꿋이 순위가 올라 급기야 지니 1위, 멜론 2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썼다.
통상 음원 차트 정상은 거대한 팬덤과 대중의 선호 가운데 한 가지라도 빠지면 이뤄낼 수 없기에 이번 역주행 성공은 데뷔 18년(일본 기준) 만에 거둔 소중한 성과다.
윤하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축하한다고 연락도 많이 받았다"며 "팬들이 '그것 봐라. 내가 윤하는 되는 주식이라고 15년 전부터 말하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해준 것이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윤하는 '사건의 지평선'을 비롯해 6집 리패키지 음반 수록곡 대부분의 작사와 작곡에 직접 참여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물오른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사랑과 이별은 가요계의 영원한 단골 주제지만 이를 '우주'에 접목해 풀어낸 게 눈에 띈다. 그러고 보면 6집 수록곡 제목들은 '오르트구름'(태양계 바깥을 둘러싼 천체 집단), '살별', '별의 조각', '블랙홀' 등 천문학적 주제가 대부분이다. 유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도 읽었던 것일까.
"우주는 워낙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도 감명 깊게 읽었어요. 소설 속 마지막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장면, 그러니까 지구와는 다른 새로운 행성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전과는 다른 것을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죠."
윤하는 "우주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라 별 보는 것을 좋아한다"며 "'코스모스'도 읽었지만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들 때문에 완독은 못 했다. 하지만 손때가 묻을 정도로 읽은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 우주라는 소재를 끝(END THEORY·끝 이론)과 연결 지은 상상력도 돋보였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예쁜 우리말 가사를 찾기가 어려워진 요즘, 그는 '사건의 지평선'에서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 아스라이 하얀 빛 /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라고 이별을 묘사한다.
윤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에 굉장히 고독한 시간을 보냈고, 작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초창기에 바이러스에 관한 정보가 잘 없어서 걸리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다들 한 번쯤 생각하지 않았느냐"며 "'내 가족과 내가 떠난다면, 마지막이 된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음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6집을 내놨지만 무언가 더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리패키지 음반도 선보이기로 했다. 6집 수록에서 탈락한 노래들을 리패키지 음반에 추가하기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몇 곡을 새로 만들기로 하고 올해 1월 제주도로 훌훌 떠났다.
"서귀포 쪽에서 드라이빙하는 도중에 석양이 보였어요.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다 노을을 보고 있더라고요. 지나가고, 끝나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게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주제를 살려보자고 생각하니 3일 안에 '사건의 지평선' 가사가 술술 나왔습니다."
윤하는 "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며 "결국은 '사람을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루는 것인데 이것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존재는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며 작업을 시작했는데 가사를 쓰다가 나도 궁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어서인지 그의 음반을 듣고 있으면 어느 현자의 선문답을 듣는 느낌이 든다.
"제가 내린 결론은 지금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재미있게 잘살자는 것입니다. 제 노래가 '전쟁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응원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윤하는 '응원가'라는 표현처럼 수록곡 '오르트구름'에서 '비욘드 더 로드(Beyond the road) 껍질을 깨뜨려버리자'라고 유쾌하게 청자의 어깨를 다독여준다.
노래 도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흥겨운 탭 댄스 리듬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메시지를 의미하고자 넣었다고 했다.
또 다른 수록곡 '살별'은 질주하는 듯 호탕하게 전개되는 멜로디가 '혜성'·'비밀번호 486' 등에서 보여 준 윤하의 초창기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 느낌이 맞아요. '살별'은 우리말로 '혜성'이라는 뜻이랍니다. 2022년 버전 '혜성'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난 언제나 돌고 있고,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으리라는 응원가를 부르고 싶었어요."
신인 시절 이야기가 나온 김에 2000년대 중반 한국과 일본 양국을 종횡무진으로 오간 그의 활약상을 꺼냈다. TV에 비친 그의 모습은 10대 어린 나이에도 떨거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다. 하지만 그는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윤하는 "그때는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인디 가수의 느낌이 강했다"며 "옆에서 도와줄 동료도, 조언해 줄 소속사 선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해낼 겁니다'라는 강인한 정신을 의식적으로 보여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지금은 우리 회사와 식구도 있고, 후배분들도 있고 이석훈 오빠도 있어 매우 여유로워졌다"며 웃었다.
"그 시절엔 제가 센 척을 많이 했어요. '비밀번호 486'으로 1위 했을 때도 무대에서는 똘똘하게 '감사합니다'라고 트로피를 잘 받아놓고 내려와서 펑펑 울었습니다. '생방송 때 울어야 그림이 좋은데 왜 답답하게 내려와서 그러느냐'고 PD께 장난스레 등짝도 맞아봤죠. 하하."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낸 윤하는 요즘은 연말 콘서트 준비로 여념이 없다. '사건의 지평선'이 큰 인기를 끌면서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돼 팬들로부터 '분수도 모르고 너무 작은 곳을 대관했다'는 덕담(?)까지 들었단다.
그는 "'사건의 지평선'이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또 음악적 모험을 떠날 것"이라며 "혜성이 궤도를 돌듯 여러 가지 취향을 아우르는 음악을 만들 테니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윤하라는 가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테니 각자의 삶을 사시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같은 뮤지션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노래가 여러분들 인생의 BGM(배경음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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