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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29, 2022

'슈룹' 성소수자 아들 품는…현대적 가치 가득 '퓨전 사극'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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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새로고침] tvN ‘슈룹’
티브이엔 제공
티브이엔 제공
<슈룹>(티브이엔)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이다. 궁중암투를 중심으로, 왕자들을 향한 중전의 교육과 모성을 그린다. 궁중암투극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드라마는 신선한 느낌이 가득하다. <슈룹>의 왕은 실존했던 왕이 아니어서, 어느 왕의 재임기인지 특정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해를 품은 달>(문화방송·2012) 이후 유행하여 이제는 익숙해졌는데, <슈룹>은 한발 더 나아가 조선 사회를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르게 그린다. 조선은 성리학의 본말론에 의거해 적서차별이 엄격한 사회였다. 그런데 <슈룹>에선 대군과 군이 대등하게 경쟁한다. 심지어 세자와 중전이 멀쩡히 살아 있고 대군이 넷이나 되는데, 군이 감히 대군에게 “너네 엄마” 운운한다. 굉장히 낯선 광경으로, 흡사 중국의 ‘언정소설’이 연상된다. 실제로 중국은 조선만큼 적서차별이 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드라마가 중국 콘텐츠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작가가 기존 사극의 틀에서 벗어나, 조선 사회를 좀 더 자유롭게 상상했음은 분명하다. <슈룹>에서 세자의 건강이 위태로워지자, 중전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세자는 원손까지 낳았으니, 기존 사극이라면 왕위 계승자는 원손이나 대군들 중 하나가 될 터이다. 하지만 <슈룹>에선 그리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정이 끼어 있다. 하나는 선대의 전례이다. 현재의 왕도 일개 군이었으나, 태인 세자의 죽음으로 인한 권력공백을 틈타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반면 태인 세자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몰락하거나 의문사했다. 또 하나의 장치는 대비의 복심이다. 대비는 후궁 출신으로 아들을 왕위에 올린 전력이 있는데다, 지금도 막후에서 수많은 후궁과 군들을 꽃놀이패 삼아 권력의 중심에 서려 한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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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에나 지금이나 대비가 중전의 입지를 흔들 수 있었던 계책은 뜻밖에도 ‘택현’이다. 즉 ‘가장 현명한 자를 택한다’는 원칙을 관철시켜, 서열을 무력화시켰다. 계급장 떼고 시험으로 뽑자는 ‘능력주의’를 무기로 삼은 것이다. 드라마는 왕자들이 세자와 함께 공부하는 배동으로 뽑히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다. 별별 사교육과 비법이 난무하며, 채점 과정도 흥미롭다. 그중 백미는 역병에 대처하는 정책을 주제로 토론시험을 치르는 광경이다. 흡사 코로나 방역대책과 토론 배틀이 연상된다. 격리, 구휼, 올바른 정보 제공, 혐오와 공포의 차단 등이 폭넓게 다뤄진다. 중전의 캐릭터도 새롭다. 첫 등장부터 궐 밖을 잰걸음으로 누비다 내뱉은 첫 대사가 “이 새끼 어디 갔어?”이다. 사고뭉치 아들을 향한 일갈이지만, 그가 궁중 예법에 묶인 예스러운 인물이 아님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중전은 권력욕에 찌든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승부욕이 강하고 진취적이며 활달하다. 궁궐 안을 뛰다시피 종횡무진하는 중전은 배우 김혜수의 건강한 이미지와 더불어 현대 여성들이 감정 이입하기에 좋은 인물이다. 그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스스로 시험공부를 하고, 세자의 치료를 위해 직접 의서를 탐독할 만큼 능동적이다. 중전의 호방한 정신세계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은 계성대군과의 에피소드이다. 중전은 계성대군이 폐전각에 숨어들어 여장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대비에게 들킬 것을 막기 위해 그 장소를 불 지른다. 그러나 중전은 아들의 특별함을 받아들인다. 흡사 쓰레기 잔해처럼 보이는 그곳의 물건들을 찬찬히 둘러보던 중전은 아들이 여장을 하고 거울 속의 자기 모습에 행복하게 빠져들던 모습을 떠올린다. 중전은 아들에게 여장한 채 그린 초상화와 비녀를 선물한다. 아들의 내면의 성적 자아를 인정하여, 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 녀석의 마음을 생각해봤어. 넘어서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했을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난 외면하지 못하겠더라 엄마니까”라는 중전의 대사는 흡사 ‘성소수자 부모회’의 속 깊은 입장을 연상시킨다.
<슈룹>은 사극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색다른 가치를 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 배경을 명목 삼아 신분차별, 성차별, 아동 성학대 등을 아무런 숙고 없이 재현하는 사극들도 존재한다. 이는 시대 배경이 고루한 탓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이 고루한 탓이다.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품은 배경에 현대적인 가치를 담은 사극을 응원한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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